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생명보험회사는 18세기에 영국에서 설립된 에퀴터블 생명보험(Equitable Assurance)입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생명보험의 역할을 하던 조합이나 전 근대적인 형태의 생명보험을 운용하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생명보험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1. 고대시대의 생명보험
원시 시대부터 집단생활을 해 온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집단의 구성원이 사망하거나 사고로 손해를 입게 되면 이를 공동으로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보험과 비슷한 이런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에 있었던 에라노이(Eranoi)와 로마 제정 후기에 나타난 콜레기아(Collegia Tenuiorum)는 보험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상부상조 제도였습니다.
에라노이는 개인에게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치거나 돈이 필요해졌을 때 도움을 주는 일종의 종교 단체였습니다. 콜레기아(collegia)는 사회적 약자나 하층민들이 서로 돕기 위해 만든 3인 이상의 사적인 단체로 신앙과 오락,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조합이었습니다. 당시엔 현세보다 내세의 구제를 주장하는 기독교가 뿌리 깊게 정착해있었기에 장례는 굉장히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콜레기아에서는 매월 일정 금액을 갹출해서 모아두었다가 구성원이 사망했을 때 장례비용을 지불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유족의 생활을 돕는 용도로도 기금을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의 상조회와 아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삼한시대부터 이어져 온 계(契)도 마을의 구성원이 돈이나 곡식 등을 모아 마을 사람의 비상 상황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보험의 역할을 일부 갖고 있습니다.
2. 중세시대의 생명보험
로마시대의 콜레기아는 중세가 시작되면서 길드(guild)로 발전했습니다. 779년 칼 대제의 문서에 처음 나타나는 길드는 초창기엔 콜레기아와 비슷한 종교적 모임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잉글랜드의 이나 왕(Ina, 688~725)과 알프레드 대왕(Alfreds, 871~901)의 법전에는 길드의 조합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 적용하는 보상 규정이 나와 있습니다.
처음엔 종교적 모임이었던 길드가 사회 여러 곳으로 퍼지면서 수공업자와 상인 길드까지 출현했습니다. 많은 길드가 경쟁적으로 발달하면서 조합원의 사망뿐만 아니라 화재, 질병, 도난 등등 각종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보상해주는 기능이 늘어났고 보험의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1492년 스페인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의 섬에 도달한 것을 시작으로 1497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개척했고, 1519년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시작했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유럽 열강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고, 오스만 투르크를 거치지 않고 동아시아와 교역할 수 있는 무역로를 개척했으며, 해양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등 세계 곳곳에서 활발한 해상 활동을 펼쳤습니다.
늘어난 해상활동으로 사고 규모가 이전과 차원이 다르게 커지자 생명을 담보로 하여 사망 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사망보험이 15세기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선박과 화물의 위험에 대한 보장이 승객과 선장, 승무원의 생명까지 확대된 것이죠. 이에 대해 알렉산더 핑글랜드 잭(Alexander Fingland Jack)은 자신의 저서인 <생명보험의 역사에 대한 소개(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Life Assurance)>에서 “그것은 해상에서 발생하는 선박과 적하의 손실 위험을 감당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생명에 대하여 대상(선박과 적하)과 유사한 계약을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당시 해상 활동을 바탕으로 생긴 사망보험은 오늘날의 생명보험과 성격이 달랐습니다. 해상에서 일어나는 위험에 대한 당시의 사망보험은 크게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피보험자가 납치되었을 때 석방에 필요한 금액을 대납해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예의 생명을 피보험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의 생명과 유가족에 대한 보장을 본질적인 가치로 두지 않고 선박과 화물의 연장선상에서 사람을 피보험 대상으로 한 것이었죠.
3. 근대의 생명보험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몬테스 피에타티스(Montes Pietatis)는 구제사업을 하는 일종의 자선 금융기관을 운영했지만 자금이 부족해서 모금을 위한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품은 출자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 매년 무이자로 정해진 돈을 낸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시금으로 원금의 10배까지 돌려받는 것이었죠. 그러나 출자자가 만기 전에 사망하면 원리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 상품은 생존보험이면서 살아있어야 돈을 받을 수 있는 생존 투기였지만, 여기에서 판매자가 손해를 안 보게 하는 사망률과 생존표, 이자계산방법 등등 생명보험의 기초적인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17세기 이탈리아 나폴리의 은행가인 톤티(Tonti)는 ‘톤틴(Tontine)’이라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특정인이 모여서 일정 기간 동안 일정액의 돈을 넣어두고 그 기간이 끝날 무렵에 살아있는 사람들만 그 돈을 나눠 갖는 것이었죠.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남보다 장수할 거라고 믿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인기를 끌었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전쟁과 공공 정책 자본출자를 위해 톤틴 방식을 적용한 금융 상품을 활발히 출시했습니다. 톤틴은 19세기 말 미국 생명보험의 약 67%가 이 방식을 적용한 상품으로 구성되었을 만큼 매우 대중적이었습니다. 톤틴은 사망표와 보험수리 연구를 기초로 만들어져서 과학적인 기법에 근거한 생명보험상품 개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생명보험은 1699년에 문을 연 머서즈 컴퍼니(Mercer’s Company)의 보험입니다. 포목상 조합이었던 머서즈 유니온(Mercer’s union)이 조합원의 복지를 위해 시작한 보험업이 확장된 머서즈 컴퍼니는 보험 가입자가 죽을 때까지 납입한 금액에 대한 이자를 사망 시에 지급했는데 이자율이 무려 30%나 되었습니다. 엄청난 이자율로 인해 결국 회사는 영업을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파산해버렸죠.
최초의 생명보험회사는 1706년에 설립된 아미카블 소사이어티(Amicable Society for a Perpetual Life Assurance)입니다. 아미카블 소사이어티의 특허장에는
“아미카블은 지금까지 보다 좀 더 쉽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부인이나 자녀, 혹은 다른 지인에게 (사망보상금을) 지급하고자 하는 모든 구성원의 상호 이익을 위하여 다음의 문서에 명시된 방법으로 자애로운 기여에 의해 상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세워졌다.”
라고 설립 의의가 적혀 있습니다. 아미카블 소사이어티에서 판매한 생명보험은 플리트가의 서점 주인이었던 존 하틀리가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입자가 사망한 후 일정 기간 동안 유가족에게 계속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기존 연금보험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보험을 개발하려 했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당시에는 부실한 보험회사나 사기 보험이 워낙 많아서 가입자가 약속된 기한까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하틀리는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톤틴을 생명보험의 형태로 바꾼 보험을 만들었습니다. 하틀리가 톤틴의 방식을 생명보험으로 바꾸면서 변화를 준 것은 살아남은 사람에게 모금액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해 사망한 사람들에게 보험금의 형태로 분배하는 것이었죠. 이것은 톤틴이 갖고 있던 ‘같은 톤틴에 가입한 내 이웃이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도덕적인 결함을 보완한 것이었고, 사망했을 때 돈을 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생명보험과 조금 더 가까워진 형태입니다.
근대적인 생명보험 회사는 화재보험 회사인 니콜라스 바본(Nicholas Barbon)의 화재 사무소(fire office)나 해상보험의 시작인 로이즈(Loyd’s) 커피하우스와 비교하여 상당히 늦게 출발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엔 인간의 사망률을 예측하고 적절한 보험료를 책정할 만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죠. 생명보험 업계에서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사망률을 예측하는 방법’이었지만, 사망률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가 처음 작성된 것은 1693년에 에드먼드 핼리 (Edmond Halley, 1656~1742) 만든 사망표였습니다.
연금을 계산하려면 사람들이 살고 죽는 기간을 정리한 수표(數表)가 필요하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핼리는 런던과 파리의 출생자와 사망자 자료로 출생과 사망을 정리한 표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구이동이 빈번한 두 대도시는 출생자와 사망자 사이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어서 자료를 정리하기 어려웠죠. 그러다 핼리는 폴란드의 작은 도시인 브레슬라우(Breslau)의 시민들의 탄생과 결혼, 사망에 관한 기록을 얻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693년에 생명표를 만들었습니다.
핼리의 생명표는 기본적으로 연금 지급을 위한 것이었지만, 사망 통계의 작성과 수학의 발달이 계속되면서 1762년에 사망보험에 사용할 만한 제대로 된 생명표가 나왔습니다. 쓸만한 생명표가 만들어지면서 평가와 보상이 편리해졌고, 생명보험산업은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1764년에 인간의 사망률과 보험 산업을 처음 결합한 에퀴터블 생명보험(Equitable Assurance)이 문을 열었습니다. 에퀴터블의 고안자인 제임스 도슨(James Dodson, 1705~1757)은 통계와 확률론을 도입해서 예상 수명을 예측했고, 이를 이용한 생명보험에 적정 수준의 보험료를 책정하여 보험업자의 수익성도 보장했습니다.
최초의 보험계리인인 윌리엄 모스델은 나이에 따른 생존율을 기록한 노샘프턴 생명표(NorthamptonTable)를 기반으로 보험료를 책정했고, 이렇게 책정된 평균 2%대의 낮은 보험료율은 아미카블이 고안한 장기 보장을 유지하면서도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수학적으로 계산된 사망 확률은 꽤 정확해서 투자자들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죠.
에퀴터블 생명보험의 사례는 생명보험에 대한 대중의 수요와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는 자본가의 요구를 결합시켜준 것이며, 에퀴터블 생명보험을 통해 탄생한 생명표와 확률 계산 기반의 보험계리는 현대의 생명보험 업계에서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에퀴터블 사는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1834년 세계 최초의 경험생명표를 발표했고 근대적인 보험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발전했습니다.
'모든 것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금융] 시뇨리지(Seigniorage)와 디베이스먼트(Debasement) (0) | 2022.12.29 |
|---|---|
| [역사] 종이 이전의 기록매체 - 파피루스, 죽간, 목간, 양피지 (0) | 2022.12.28 |
| [국제기구] 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0) | 2022.12.15 |
| [동물] 집고양이의 기원 (0) | 2022.12.13 |
| [음악]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아보는 재즈의 역사 (0) | 2022.12.10 |
댓글